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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분쟁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만화 4편(팔레스타인(Palestine),『Footnotes in Gaza』,『Baddawi』,『I Remember Beirut』)

by wiseman22 2025. 3. 30.

Palestine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은 단순한 국경 문제를 넘어, 종교, 민족,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세계 최대의 장기 분쟁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글이나 뉴스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화는 감정 전달과 사실 기반 서사를 동시에 담아내는 탁월한 매체로, 이러한 분쟁의 현실을 다층적으로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특히 르포만화, 자전적 만화, 중립적 다큐 스타일의 만화 등은 독자로 하여금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팔레스타인 분쟁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만화 5편을 선정하여 각 작품의 특징, 작가의 시선, 인문학적 해석을 함께 소개합니다.

팔레스타인 역사와 현실을 담은 『팔레스타인(Palestine)』

조 새코(Joe Sacco)의 『팔레스타인』은 현대 만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그는 기자 출신의 만화 작가로, 실제로 1991년부터 1992년 사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해 수개월간 현지에서 취재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을 만화라는 형식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만화는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과의 인터뷰, 현장 관찰, 정치적 사건에 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기자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분쟁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가장 큰 강점은 선입견 없이 팔레스타인 내부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새코는 만화 내에서 자신의 시점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가령, 어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거나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는 장면들도 포함되어 있어, 독자가 작가의 여정을 함께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흑백으로 구성된 작화는 단조로우면서도 사실감을 극대화하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 분노, 슬픔을 세밀하게 담아냅니다. 언론이 쉽게 다루지 않는 내용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독자의 관점을 바꾸는 힘을 가진 만화입니다.

 

Footnotes in Gaza

서구의 시선으로 바라본 『Footnotes in Gaza』

『Footnotes in Gaza』는 『팔레스타인』 이후 조 새코가 다시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제작한 또 하나의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1956년 가자지구의 두 마을인 칸유니스(Khan Younis)와 라파(Rafah)에서 이스라엘 군에 의해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명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서구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역사 기록에서도 소외된 주제였지만, 새코는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고증과 인터뷰를 통해 충실히 복원해냅니다.

작품은 과거 사건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면서,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과 연결 지으며 이야기의 층위를 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현재의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단순한 과거사 복원에 그치지 않고 팔레스타인 분쟁의 구조적 문제까지 깊이 파헤칩니다. 특히 새코는 ‘기억’의 불완전함과 ‘기록’의 정치성에 대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누가 진실을 기록하는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제시합니다.

『Footnotes in Gaza』는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는 만화 중에서도 정보량과 깊이 면에서 매우 뛰어나며, 전쟁과 기억, 국가와 개인 사이의 긴장을 밀도 있게 다루는 인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단순히 분쟁을 다룬 만화를 넘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만화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Baddawi

아랍계 작가의 목소리를 담은 『Baddawi』

『Baddawi』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작가 레일라 압달라(Laila Abdelrazaq)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입니다. 그녀는 레바논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바다위(Baddawi)'에서 자란 아버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디아스포라 세대가 겪는 갈등을 감성적으로 풀어냅니다. 기존의 분쟁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한 개인과 가족의 시선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Baddawi』는 작화 스타일이 매우 독특한데, 단순화된 선과 소박한 그림체가 오히려 주제의 무게와 강한 대비를 이루며 감정을 자극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시선에서 보는 폭격, 피난, 검문소의 기억 등은 독자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 작품은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난민의 일상과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써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또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공감 방식에 맞게 온라인 퍼블리싱을 중심으로 확산된 이 만화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한 감성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감정적 접근과 서사의 깊이를 동시에 갖춘 이 작품은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이해를 한층 인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립니다.

 

I Remember Beirut

팔레스타인의 여성 시선 『I Remember Beirut』

『I Remember Beirut』는 레바논 출신 여성 작가 제우디(Joumana Medlej)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비록 작가의 국적은 레바논이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의 전쟁 현실을 밀접하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삶과 전쟁의 교차점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작품은 전쟁의 거대한 구조보다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여성과 어린이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독자에게 감성적으로 강하게 다가옵니다.

작품의 톤은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가족과의 일상, 전쟁 중의 학교 생활, 대피소에서의 기억 등 세밀한 묘사를 통해 전쟁의 일상화를 보여줍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및 중동 분쟁이 단지 외교나 군사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의 ‘삶의 문제’임을 상기시켜줍니다. 제우디의 작품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이미지로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하며, 전쟁을 둘러싼 젠더적 시각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 만화들은 단순히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 속 인간의 감정, 기억, 삶을 담아냅니다. 『Palestine』과 『Footnotes in Gaza』는 르포 만화로서의 깊이와 사실성, 『Baddawi』는 난민의 정체성과 가족사를 통한 감성적 접근, 『I Remember Beirut』는 여성과 일상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들 작품은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복잡한 분쟁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며, 독자에게 보다 넓고 깊은 시각을 제공합니다. 만화를 통해 전쟁을 넘은 인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